우리 집엔 남자가 둘이다. 아버지와 나. 여자는 셋이다. 엄마와 아내와 딸. 공교롭게 여자들이 모두 외출한 토요일 오후. 남자 둘이 점심을 해결해야 했다. “아버지, 뭐 드실래요?” 이렇게 묻긴 했지만 난 아버지 답이 뭘지 알고 있었다. ‘짜장면.’ 아버지는 짜장면(아! 짜장면을 자장면이 아니라 짜장면으로 쓸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한가!)을 진짜 좋아하신다. 하지만 난 짜장면을 사드릴 생각이 없다. 얼마 전에도 엄마가 외출한 날, 아버지를 모시고 가 탕수육을 사드렸건만, 아버지는 엄마한테 ‘아들이 짜장면 사줬다’고 하시는 거다. 그것도 일반 탕수육이 아닌 꿔바로우를 사드렸는데. 탕수육 얘긴 쏙 빼고 그저 짜장면이라니! 흥, 삐졌다. 그래서 오늘은 짜장면 안 살 거다.
예상대로 아버지는 “짜장면이나 먹을까?” 하셨다. 난 단호히 말했다. “싫어요! 고기 드실래요?” “낮부터 고기는 좀 부담스럽고 어디 국수 같은 거 없을까?” “아, 그럼 칼국수 드실래요?” 집 근처 바지락 칼국수 잘하는 집이 떠올랐다. “그래, 기왕이면 오랜만에 고기 국물 칼국수 먹었으면 좋겠다.” 헐, 고기 국물 칼국수라니.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 소호정, 거기 가면 되겠다!”
어쨌거나 아버지가 원하시는 고기 국물 칼국수가 당장 소호정 밖에 생각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 송파구청 건너편 방이동 먹자골목안에 있는 소호정 송파점을 찾았다. 칼국수 두 개. 수육이나 전, 문어, 묵 같은 안주 거리도 있긴 한데, 연세가 드셔서 요즘은 영 많이 드시질 못하니 억지로 시킬 수가 없었다.
반찬 3종 세트를 젓가락으로 한 번씩 건드리니 고기 고명과 초록색 파 고명이 올라간 고기 국물 칼국수가 나왔다. 언뜻 보면 좀 작아 보이는데, 먹다 보면 양이 만만찮다. 소호정 칼국수 처음 먹던 날도 그랬다. ‘뭐여, 이 가격에 요거 주나? 공기밥이나 하나 더 시켜야 겠네.’ 그런데 한 번도 공기밥을 추가로 시킨 적이 없다. 먹다 보면 꽤 배가 불러오니까.
간간한 고기 국물이 진하다. 국물을 떠 드신 아버지가 꽤 만족한 표정이다. 이쯤에서 그냥 넘어갈 순 없지. “아버지, 반주 한 잔 하실래요?” 연세 드시면서 술도 많이 약해지셨지만, 반주의 유혹을 견디긴 힘드셨나 보다. “그래, 한 잔 마실까?” 푸른색 참이슬 한 병이 올라왔다. “요새 소주는 참 마시기 좋아. 예전엔 꽤 독했는데.” 대학 다닐 때 아버지 직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리고 그 때 왜 아버지가 날마다 소주를 드셨는지 비로소 이해했다. 고된 하루 일을 마치고 동료들과 소주 한 잔 하지 않고서는 돌아올 힘이 없으셨을테니까. 그리고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딱 한 잔의 비밀도 이해했다. 그 한 잔이, 소주잔이 아니었다. 맥주잔이었지. 아버지의 술 냄새를 맡으며 한 잔은 거짓말이라고 했지만, 결국 아버지는 거짓말 하지 않으셨던 거다.
“잘 먹었다.” 아버지의 트림이 싫지 않다. 소주 두 잔에 얼굴엔 붉은 빛이 돌지만 웃음도 흐른다. 반주가 좋은 건 이런 거다. 그래, 아들은 가끔 아버지와 반주를 즐겨야 한다. 어쨌든 집안에서 유일한 남자 사람이니깐.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족속이니까.
상호: 소호정 송파점
전화번호: 02-421-4448
주소: 서울시 송파구 방이동 65-4
예상대로 아버지는 “짜장면이나 먹을까?” 하셨다. 난 단호히 말했다. “싫어요! 고기 드실래요?” “낮부터 고기는 좀 부담스럽고 어디 국수 같은 거 없을까?” “아, 그럼 칼국수 드실래요?” 집 근처 바지락 칼국수 잘하는 집이 떠올랐다. “그래, 기왕이면 오랜만에 고기 국물 칼국수 먹었으면 좋겠다.” 헐, 고기 국물 칼국수라니.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 소호정, 거기 가면 되겠다!”
안동국시는 칼국수의 귀족인가?
소호정은 김영삼 대통령 칼국수로 유명한 집이다. YS가 정말 좋아해서 날마다 점심때 먹었다던 그 칼국수라는 거다. 소문은 그렇지만 솔직히 나도 진실은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진짜 비싸다. 소호정을 처음 알던 3년 전엔 8천원, 그리고 지금은 9,500원. 칼국수 한 그릇에 거의 돈 만 원이라니. 흔히 칼국수는 서민음식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정도면 절대 서민음식이 아니다… 라고 쓰고는 생각해 보니 요즘 바지락칼국수도 웬만한 덴 7천원이다. 아, 서민음식은 이제 라면과 짜장면 밖에 없단 말인가!어쨌거나 아버지가 원하시는 고기 국물 칼국수가 당장 소호정 밖에 생각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 송파구청 건너편 방이동 먹자골목안에 있는 소호정 송파점을 찾았다. 칼국수 두 개. 수육이나 전, 문어, 묵 같은 안주 거리도 있긴 한데, 연세가 드셔서 요즘은 영 많이 드시질 못하니 억지로 시킬 수가 없었다.
소주 한 잔, 국물 한 모금
배추김치, 부추김치, 깻잎. 소호정 반찬 3종 세트가 등장했다. 배추김치와 부추김치는 그렇다 쳐도, 향긋하면서도 톡 쏘는 깻잎은 이 집 칼국수와 참 잘 어울린다. 아, 그러고 보니 깻잎이 설렁탕하고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났다. 고기 국물과 깻잎. 이거 괜찮은 조화다.반찬 3종 세트를 젓가락으로 한 번씩 건드리니 고기 고명과 초록색 파 고명이 올라간 고기 국물 칼국수가 나왔다. 언뜻 보면 좀 작아 보이는데, 먹다 보면 양이 만만찮다. 소호정 칼국수 처음 먹던 날도 그랬다. ‘뭐여, 이 가격에 요거 주나? 공기밥이나 하나 더 시켜야 겠네.’ 그런데 한 번도 공기밥을 추가로 시킨 적이 없다. 먹다 보면 꽤 배가 불러오니까.
간간한 고기 국물이 진하다. 국물을 떠 드신 아버지가 꽤 만족한 표정이다. 이쯤에서 그냥 넘어갈 순 없지. “아버지, 반주 한 잔 하실래요?” 연세 드시면서 술도 많이 약해지셨지만, 반주의 유혹을 견디긴 힘드셨나 보다. “그래, 한 잔 마실까?” 푸른색 참이슬 한 병이 올라왔다. “요새 소주는 참 마시기 좋아. 예전엔 꽤 독했는데.” 대학 다닐 때 아버지 직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리고 그 때 왜 아버지가 날마다 소주를 드셨는지 비로소 이해했다. 고된 하루 일을 마치고 동료들과 소주 한 잔 하지 않고서는 돌아올 힘이 없으셨을테니까. 그리고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딱 한 잔의 비밀도 이해했다. 그 한 잔이, 소주잔이 아니었다. 맥주잔이었지. 아버지의 술 냄새를 맡으며 한 잔은 거짓말이라고 했지만, 결국 아버지는 거짓말 하지 않으셨던 거다.
아버지와 아들은, 남자다
진한 고기 국물과 부드러운 면발, 간간히 씹히는 고명이 쫀득하다. 거기에 아삭한 김치와 짭잘하면서도 톡 쏘는 깻잎, 부추김치가 칼국수의 맛을 돋군다. 칼국수에 무슨 소주냐고 하겠지만, 이런 국물이란 혼자서 소주 한 병이라도 먹을 기세. 그러나 아버지를 모시고 갔으니 그저 두 잔으로 족할 뿐. 아버지도 두 잔에서 그만 내려놓으신다. 그래, 반주란 딱 이 정도가 좋은 법이다.“잘 먹었다.” 아버지의 트림이 싫지 않다. 소주 두 잔에 얼굴엔 붉은 빛이 돌지만 웃음도 흐른다. 반주가 좋은 건 이런 거다. 그래, 아들은 가끔 아버지와 반주를 즐겨야 한다. 어쨌든 집안에서 유일한 남자 사람이니깐.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족속이니까.
상호: 소호정 송파점
전화번호: 02-421-4448
주소: 서울시 송파구 방이동 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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