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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icious 2DAY

[술이 예술] 맥주 없이 소설도 없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예술가들이 모두 술을 즐기는 건 아닐 테지만, 많은 예술가들이 술을 사랑하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고뇌하는 예술가들의 곁에는 늘 술잔이나 술병이 함께하는 걸 흔히 볼 수 있었는데요. 또 술에 취한 예술가의 사연도 많고요. 그래서 비투지기가 술과 인연이 깊은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찾아보았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상실의 시대> (원제: 노르웨이의 숲), <1Q84>로 잘 알려진 작가죠?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술과 무척 관련이 깊은 사람이랍니다. 오늘은 비투지기가 무라카미 하루키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하루키의 문학은 20년 전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고 있는 일본의 소설가입니다. 특히 그의 처녀작 <상실의 시대>는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준 작품인데요. 우리나라에서는 모 TV CF에서 <상실의 시대>를 읽고 있는 여성에게 남성이 다가가 "노르웨이 숲에 가보셨나요?"하고 묻는 장면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아직 어렸던 저는 그 CF를 계기로 <상실의 시대>를 읽으면서 처음으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났던 게 기억나네요.

맥주를 사랑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 맥주 나라의 VIP

기록이야 어찌 되었든, 42킬로미터를 다 뛰고 난 뒤에 벌컥벌컥 단숨에 들이마시는 맥주 맛이란 그야말로 최고다. 이 맛을 능가할 만큼 맛있는 것을 나는 달리 떠올릴 수가 없다. 그러니까 대개 마지막 5킬로미터 정도는 "맥주, 맥주"하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면서 달리게 된다. 이렇게 가슴속까지 맛있는 맥주를 마시기 위해서 42킬로미터라는 아득한 거리를 달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어떨 때는 너무나 잔인한 조건인 듯 싶게도 느껴지고, 어떨 때는 지극히 정당한 거래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42킬로미터 뛰고 난 뒤에 마시는 맥주' 중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들의 공톰점으로 많은 사람들이 상실, 섹스와 함께 맥주를 꼽습니다. 하루키의 소설에는 심심치 않게 맥주 마시는 장면이 등장하곤 합니다. 그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일상적으로 맥주를 마십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텔레비젼을 보면서, 대화를 하면서.. 그리고 잠들기 전에도 맥주를 마시는 이야기를 심심치않게 볼 수 있어요.

소설에 맥주가 자주 등장하는 것 만큼이나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맥주를 좋아하기로 유명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책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에서 자신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맥주를 좋아하고 조개를 먹지 않는 보통 남자라고 소개하기도 했는데요.

심지어는 자신이 만일 맥주의 나라에 간다면 분면 VIP 급의 빈객으로 대우받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마시는 맥주량이 상당하고, 소설 속에서도 맥주 지지론을 펴며 광고를 해 왔으니까요. 이러다보니,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책을 읽자마자 맥주를 사러 달려가는 일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술에 대한 철학 - 좋은 술은 여행하지 않는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술을 제대로 마시려면 그 술의 생산지에서 마셔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되도록 술이 만들어진 장소에서 가까우면 가까울 수록 좋고요. 그 이유는 술이 옮겨지면서, 또 기후가 달라지면서 진짜 맛이 변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환경이 달라져서 향이 달라지기 때문이기도 하며, 심지어는 심리적으로 술맛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맥주에만 깊은 애정을 보인 젊은 시절과 달리, 나이가 들면서 점차 위스키와 포도주 등 다른 술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요. 그는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로 위스키와 흑맥주를 테마로한 여행을 떠난 후, 그 여행에서 느낀 점을 에세이로 묶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을 썼습니다.
나는 아일랜드를 여행하면서 기회가 닿으면 낯선 고장의 퍼브에 들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그 가게만의 독특한 '일상적 이야기'를 한껏 즐길 수 있었다. 길을 가다가 문득 눈에 뜨니 숲속으로 들어가서는, 나무 등걸에 걸터앉아 가슴 가득 숲의 기운을 들이마시는 그런 느낌이었다. 숲에는 저마다 그 숲의 냄새가 있다. "이 고장의 퍼브에는 과연 어떤 사람들이 모여들며, 어떤 맥주가 나을까?"하는 것이 내게 있어서는 하루가 끝나 갈 무렵에 맛보는 자그마한 즐거움이었다."

 -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무라카미 하루키와 맥주 CF

이렇게 맥주를 좋아하다보니, 무라카미 하루키에게는 맥주회사들에게서 CF 모델 제의가 들어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겠죠? 그러나 무라카미 하루키는 모두 제의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도저히 CF를 보는 시청자들이 자신의 얼굴을 보고 맥주를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맥주를 꿀꺽꿀꺽 마시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맥주회사들의 노력은 꾸준히 계속되었습니다. 심지어는 CF 제안을 하기 위해 무라카미 하루키를 베네치아까지 쫓아와 설득한 맥주회사 직원도 있었을 정도였으니까요. 굉장하죠?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직원을 '만약 고대 이집트에서 태어났다면, 역사에 남을 멋진 피라미드라도 축조했을 것'이라고 평했습니다.)

꾸준한 맥주회사들의 노력이 통했는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심경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는지, 혹은 자신의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면 괜찮았던 것이었는지.. 올해 초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의 한 맥주 회사 CF의 나래이션을 직접 쓰기도 했답니다.


맥주와 얽힌 사연이 참 많은 무라카미 하루키. 이번 주말에는 그와 함께 그의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요? 아! 물론 미리 차가운 맥주 한 캔도 준비해두고요.
*참고문헌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수필집2: 세라복을 입은 연필>
무라카미 하루키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무라카미 하루키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